이것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
오늘날 공주라는 존재는 흔히 구해지는 역할이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걸크러쉬 이미지로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공주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공주는 언제나 왕자나 영웅에게 구해진다. 그것은 동화부터 시작한 오랜 전통이며 이미지다. 하지만, 우리는 공주를 죽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게임 『Slay the Princess』다.
개발:Black Tabby Games
장르:비쥬얼 노벨, 공포, 타임루프, 코스믹호러, 어드벤처
한글패치:비공식 지원
스팀평가:압도적으로 긍정적(6,749개의 평가 2024년 1월 18일 기준)
플레이타임:8시간(업적 100% 클리어 기준)
가격:19500원
1.소개
일반적인 비주얼 노벨들처럼 선택지를 고르면서 진행된다. 풀더빙도 돼있다.
작중 서술자로 해설자,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처럼 영웅의 목소리 같은 게 나오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플레이어의 선택이다. 게임이 시작하면 우리는 '공주를 죽여라'라는 목표를 받는다. 왜? 그녀가 오두막에서 나오면 세계를 멸망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떻게? 그 부분은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는 공주를 죽이러 가야 한다.
2. 등장인물
이 게임의 히로인이자, 적이자, 그리고 모든 것. 공주다. 그녀는 오두막의 지하실에 족쇄로 묶여있다. 당신은 그녀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죽이라는 녀석도, 그녀도 모두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두 번째 등장인물인 주인공... 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이 없다. 사실상 플레이어의 대변인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공주를 죽이라는 임무를 받고 오두막으로 보내진다.
3. 소감
처음 게임을 설치했을 때, 아니... 무슨 이런 그래픽으로 14GB씩이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만큼 할만하다. 괜히 14GB나 텍스트 게임이 쓰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수많은 선택지와 그로 인한 무수한 분기가 이 게임에는 있다. 그야말로 선택지 고르기 게임의 진수랄까. 단순히 분기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풍부한... 진짜 '선택'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사소한 선택들 조차 엔딩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게임에 있는 모든 선택은 당신과 공주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각각의 엔딩이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땜빵했다는 느낌보다 정말 하나의 결과로 느껴질 수 있게 공들인 흔적도 보였다.
물론 표현이 아무래도 '공포' 태그가 있다 보니 으아아... 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 뭐야 보는 사람을 일부러 불쾌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찐한 느낌은 느껴지지 않아서 생각보다 거부감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엔딩 부근에 가서는 모든 전말이 밝혀지는데, 내심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후반 파트에서 모든 떡밥을 정리하려는 부분이 좀 직접적이어서 살짝 몰입을 깨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모든 요소를 감안해도 잘 만든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게임의 공주는 정말로, 정말로 당신이 생각하는 존재일 것이다. 기억해라. 공주를 죽여라, 그러나 죽일지 말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지금까지 『Slay the Princess』였다.
=======================================해당 내용은 게임을 다 클리어했다는 전제하에 작성되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은 분은 지양해 주세요. 또한, 개인의 해석일 뿐 공식이 아닙니다.=======================
역시 제일 좋았던 것은 공주가 상징하는 바였던 것 같다. 공주는 '변화'를 상징하는데, 덕분에 처음에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상황이 머리에 팍팍! 하고 꽂혔던 것 같다. 공주는 '내가 무서울지도 모르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정말 내가 공주를 하나도 위험하지 않다고 믿었다면 그녀는 그렇게 되었다. 굉장히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최종 국면에서 우리는 이런 공주와 함께 크게 4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엔티티를 죽이기, 엔티티와 같이 나가기, 원본 공주를 죽이기, 원본 공주와 같이 나가기. 그중에서 가장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원본 공주와 같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모든 엔딩을 보고 나서 어째서 나는 심적으로 엔티티와 같이 나가는 것은 안되고, 원본 공주와 같이 나가는것은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죽음과 변화가 공주와 적막이기 때문에 세상에 이 둘은 당연히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존재인 게 맞기 때문이다. 게임을 클리어하고 곰곰이 고심해 본 결과, 이것은 '관점'의 차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중 선택지로도 나오는 "너무 높은 위치에 있으면 오만한 시선이 되어버린다."라는 말처럼 신적인 존재로써 엔티티와 주인공이 함께 나가면 펼쳐지는 것은 '절대적인 현실'이다. 절대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처럼, 그들의 현실은 더 이상 사라지지도 변화할 여지도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관점도 마찬가지다. 이는 기존의 세계를 자신들만의 절대적인 잣대로 규정하고 마음대로 바꿔버리는 는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보편적으로 세계가 행복하면서도 그 둘이 행복하기 위해서, 그들은 '작은 존재'가 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원본 공주와 같이 나가는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작은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세상을 해치지 않고 다양한 관점을 가지게 된다. 물론 세계라는 변수가 존재하는 한, 그들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절대적인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업적의 이름인 '그리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나요?(And? What happens next?)'처럼 그들의 앞길은 행복일 수도, 불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순간이 바로 이 게임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이유다.
우리 세상도 이처럼,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것도 모른다. 절대적인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공주와 당신은 함께 맞서게 될 것이다. (Whatever it is, you'll face it together.)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다. 불확실한 세상을 함께 맞서기 위해서.
결국 게임에서 죽여야 할 공주는, 내 마음속에 있던 공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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