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리뷰]광기의 잔혹동화, 백야기담

Otakuman 2024. 1. 23. 19:40

이제는 자라 버린 어른들을 위한 동화

함께 들으면 좋은 배경음악 -> https://youtu.be/E2qyyyOSlsw

 

대부분의 사람은 동화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읽어주시던  수많은 동화들이 떠오른다. 이런 경험이 없더라도 적어도 사회에 있다면 모두가 아주 조금이라도 알만한 것이 바로 동화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양치기 소년, 성냥팔이 소녀 등등등... 하지만 알고 있는가? 사실 동화들의 원전이란 것은 잔인하거나 섬뜩하기 그지없다.

동화가 처음 만들어진 옛날에는 아동인권이란것이 부족하고, 들려주는 이야기들의 대부분 아이들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해 보면 그럴싸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나는 이게 사실 동화의 원전이야~~라고 하면서 들이미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에게 동화는 팍팍한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있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난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희망 같은 것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얼마나 좋은가. 꿈과 희망의 이야기란 것은.

하지만 인간이란 원래 금기시 되는것에 끌리는 법이라고 하던가, 동화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동화를 이리저리 사용한 소재가 보이면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임, 바로 오늘 소개할 『백야기담』이다.

제작:이그노스트
장르:쯔꾸르, 메르헨, RPG, 미연시
한글패치:O(공식 지원)
플레이타임: 약 25시간
가격: 일반판 16500원, 시크릿 플러스 19500원


1. 소개

백야기담은 2020년 모바일로 출시했던 '알베도 카르타'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소개에 앞서 나는 무검열판, 시크릿 플러스판으로 플레이했음을 밝힌다. 

 

게임의 전체적인 컨셉은 잔혹동화로 주요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동화에서 비롯되었다. 스토리나 배경 곳곳에 이러한 동화의 요소가 한껏 뒤틀리고 암울하게 배치되어 있다. 특히 고어, 식인 등 거부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요소도 많이 있다. 하지만 마냥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고 등장인물들의 밝음과 개그스러운 상황을 통해 지속적으로 분위기를 환기시켜준다.

 

게임의 시스템은 흔한 쯔꾸르 게임으로 주인공은 고정, 파티에는 두 명의 캐릭터를 데리고 갈 수 있다. 각 캐릭터는 세 개의 스킬을 가지고 있으며 데려간 캐릭터의 조합과 지역에 따라 자기들끼리 여러 대사들을 말하기도 하고 적 조우 대사도 다르다. 

 

스토리의 큰 줄기는 의문의 저택에 발을 들였다가 살해당하고 부활한 주인공이 자신을 '가주'라고 말하는 의문의 여인 '세네렌톨라'의 말에 따라 영혼이 온전히 복구되지 못해 기억이 없어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의 끝'으로 가서 일곱 개의 '세계의 색'을 모으러 가는 내용이다.

 

2. 등장인물

각자 어떤 동화가 모티브인지 말하면 너무 스토리가 추측하기 쉬워진다고 생각해서 많은 설명을 하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그녀들을 알아가는 것은 직접 즐기는 즐거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정말 궁금하면 위키 문서를 참조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주인공. 백발의 얄팍한 미소년으로 머리도 길다. 사용하는 무기는 총. 세네렌톨라의 말에 따르면 기억을 잃기 전에는 굉장한 마법사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어벙하고 무던한 성격의 호인이다.

 

히로인 1. 주인공을 처음 안내해 주는 히로인으로, 스스로가 주인공이 만든 인형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사용하는 무기는 낫. 인형은 직접적인 무기를 들 수 없어서 낫을 든다고 한다. 인형인만큼 모든 행동 원리는 주인공인 가주를 위해 움직인다.

 

 

히로인 2 겨울공국의 국경에서 '이리'라고 하는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늑대인간을 사냥하는 '이리 사냥꾼'이다. 입도 험하고 돈 밝히고 인간이 좀 가볍다. 하지만 덕분에 암울한 게임 분위기에서 감초 같은 역할을 잘 수행하는 포지션. 사용하는 무기는 석궁.

 

 

히로인 3 겨울공국의 기사. 올곧고 강직한 성격으로 다들 나사가 조금씩 빠져있는 일행에서 상식인 포지션을 맡고 있다. 하지만 겨울공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검푸른 머리 사냥'에 쫓기고 있는 처지이다. 사용하는 무기는 검.

 

 

히로인 4 깊은 숲에 살고 있는 마녀로 어려 보이지만 본인 주장에 따르면 벌써 24세는 된다고 한다. 육체가 없는 쌍둥이 언니이자 자기 지팡이인 '프레이냐'의 목표인 육체 만들기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전형적인 겁쟁이 캐릭터로 소심하고 맹하다. 그러나 암울한 분위기와 대비되는 그녀의 소심함은 절로 피식 미소를 짓게 만든다.

 

 

히로인 5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름은 '하카티'. 본인은 인간과도 이리와도 다른 '이리 인간'이라고 소개한다. 자기 말로는 생각보다 순진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성격이 순박하고 조금 바보라서 그런지 하는 짓은 전형적인 강아지나 다름없다. 티격대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그녀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

 

 

히로인 6 주점 '토치우드'의 간판 웨이트리스로 서비스업에서 종사하던 탓인가, 항상 밝고 털털하며 능글맞은 태도를 고수한다. 섹드립도 과감 없이 마구 쳐댄다. 추후 소개되는 카렌과는 무척 사이가 안 좋은 편.

 

 

히로인 7 겨울공국의 영웅 가문 중 하나인 '퀴에스' 가문의 여식으로, 이상하게도 가문의 저택이 아니라 하수구에 있는 얼음 속에 갇혀있던 채로 발견된다. 귀족적인 신념이 뚜렷한 편이며 항상 우아한 태도를 견지하려 한다. 앞에서 나온 마치와는 서로 비꼬기 바쁘다.

 

3. 소감

우선 히로인들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 다들 나름의 이야기가 분명히 있고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서 무척 좋았다. 개성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티키타카도 굉장히 좋았고, 제작사 쪽에서도 이런 부분을 의식하고 필드 이동 중에 캐릭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을 넣은 것 같은데 아주 좋았다. 또한 아쉬운 파트가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히로인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끝마칠 수 있게 구성된 것이 무척 좋았다.

 

전투 시스템에 관해서는.... 뭐, 넘어가자. 쯔꾸르 게임인 만큼 적당히 막일을 하다 보면 원하는 캐릭터로 다 넘어갈 수 있더라. 좋아하는 캐릭터만 고정으로 밀고 간다면 그냥 스토리 진행하면서 몬스터만 잡아도 충분히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필드 보스가 가끔 특정 상태이상에 반응해서 갑자기 즉 사기 같은 걸 날리는데 거진 모르면 당해야지 급이라서 그건 조금 그랬던 것 같다.

 

게임 전반적인 얘기를 해보겠다. 초반부의 게임은 훅! 하고 사람을 끌어당긴다. 좋은 음악, 기괴하게 비틀린 동화들이 엿보이는 세계관, 그리고 훌륭한 미소녀들! 이 세 가지는 잘 조화되어 게임 속으로 나를 빠트렸다. 가끔 매섭게 날아오는 잽 같은 연출들은 긴장감을 끌어올리면서 중후반까지 계속해서 상승한다. 그리고 그 쯤부터 대충 엔딩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하고 지금까지 가파르게 오르던 것과는 달리 완만하게 게임은 하강한다. 그래서 후반부는 조금 아쉬웠던 것 같다. 하지만 엔딩 파트에서는 결국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게임에 '백설과'라고 하는 아이템이 있다. 겨울공국의 주식으로 추운 곳에서 잘 자라며, 먹으면 우리는 세계의 '진실'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원래도 미쳐있던 세계는 조금 더 미친다. 끝이다. 그렇다. 원래 세계는 미쳐있는 것이다. 게임에서 말하듯이 '진실은 잔혹하다.' 어릴 적 동화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속에서 살아오던 어린 우리들도 이제 어른이 되어 세계를 직시하게 되었다. 이 겨울공국처럼 세상은 미쳐있다. 온갖 불행과 비극이 산재해 있다.

 

이런 세상의 풍파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이어진다. 동화에서 시작됐을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동화적인 문제에 처한다. 가족 문제, 권선징악, 속죄와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 문제들은 주인공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다들 나름의 끝과 결론을 내리게 된다. 마냥 동화처럼 행복하지는 않은 결말들로 말이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다시금 선택에 기로에 놓인다. 진실을 볼지, 아니면 덮어두고 순간의 행복을 추구할지. 순간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확실하게 한 명은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대부분이 고르는 보통의 평범한 결말이리라. 그러나 진실을 바라본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파국이다. 하지만 그 모든 파국이 지나가야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미친 세상에서 그들 모두를 지키고 싶다고. 그리고 그 순간 히로인들이 그와 함께하고 싶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해 시작되는 결말 파트는 정말 좋다. 이야기의 끝에서 결국 한껏 비틀린 동화를 내세우던 게임은 지극히 동화적인 답변을 되돌려준다.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가족처럼 함께하는 사람들은 소중하다,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된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런 꿈과 희망이 가득한 답변을 말이다. 어쩌면 진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니라, 어린 시절 우리가 들어왔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있을지 모르는 동화 속의 인물들이 우리가 보아온 수많은 비극을 거쳐오고 나서 전해준다는 점이 마음을 깊이 울려 눈물을 흘리게 하고있다.

 

이야기가 끝나고, 동화책이 끝나면 잠들어있는 아이들처럼. 등장인물들은 곱게 잠들어 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당신도 어떨까. 이 잔혹하지만 감동적인 동화책을 읽고 그들처럼 푹 잠들어 보는 것은.

지금까지 『백야기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