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리뷰]차가운 사회에서 더욱 빛나는, 산나비

Otakuman 2023. 12. 24. 20:50

한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사이버 펑크게임

2023년 12월 24일. 올해도 크리스마스이브가 찾아왔다. 밖을 둘러보면 날씨는 영하를 달리고 있는데도 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연인들로 가득하다. 다들 물리적인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의 온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따뜻한 집 안에 있어도(사실 그렇게 따뜻하지는 않은 것 같다. 보일러가 13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왜인지 마음이 추운 사람들도 있다. 바로 나처럼. 이런 모순적인 겨울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게임이 있었다. 바로 먼 미래, 치솟는 범죄율, 무너진 사회적 신뢰, 피와 살로 이루어진 따뜻한 인간의 육체조차 차가운 강철로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차가운 사회를 그리는 사이버펑크 장르의 게임. 『산나비』였다.

개발 : 원더포션

장르 : 사이버펑크, 액션 어드벤처, 플랫폼 

한글패치 : 공식지원

가격 : 15500원

스팀 평가 : 압도적으로 긍정적 (13,401 평가. 2023년 12월 24일 기준)


1. 소개

기계팔로 무장한 퇴역 군인은 초거대 재벌의 부패한 사유 도시를 오릅니다. 도시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그리고 '산나비'를 찾아내 복수하기 위해.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역동적이고 스타일리쉬한 2D "사슬 액션" 어드벤처 플랫포머 게임, 산나비입니다. - 스팀 소개

 

스팀 소개에서 찾아볼 수 있다시피. '어드벤처', '플랫포머', '사이버펑크' 게임이다. 다만 특이한 점은 사슬 액션이라는 점인데, 제작사에서도 이를 내세울 만큼 특징적인 요소이다. 이는 주인공의 한쪽 팔이 사슬팔이라 이런저런 와이어 훅 액션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거대한 배트맨 그래플링 훅을 팔에 달아뒀다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전체적인 게임 플레이는 거의 카타나 제로와 흡사한 느낌을 받았다. 주는 경험은 확실히 다르긴 하지만... 진행방식이?

 

2. 등장인물

주인공. 여러 호칭이 나오지만 보통은 준장님으로 불린다. 은퇴 전에는 전설로 불리던 군인으로 설정상으로나 작품에서나 굉장한 전투력을 보여준다. 무뚝뚝하고 작전에 엄청 신경 쓰는 모습이지만 생각보다 막 나가는 모습이나 따뜻한, 정이 있는 면모도 보여준다. 허당 같은 모습도 종종 보인다. 클리셰 대사를 계속 남발한다던가...

금마리. 주인공이 작 중에서 구하러 가게 된 소녀이며 게임 내내 동반자로서 함께한다. 주된 역할은 전투 부분에 많은 역량이 집중돼있는 주인공이 취약한 전자, 기계 영역을 보조한다. 실제 전투에서는 딱히 하는 건 없다. 하지만 스토리 전체의 분위기를 주인공이 칙칙해도 늘어지지 않게 잘 이끌어가는 발랄함을 보여준다. 

무뚝뚝한 주인공과 함께라면 끝도 없이 늘어져 노잼이 될 수 있는 설명파트를 깔끔하고, 귀엽게 풀어나가는 모습.

아주 훌륭하다. 특히 굉장히 귀엽다는 점에서.

 

3. 소감

다 하고 나서 든 소감은 '잘 만들었다'라는 감탄이었다. 우선 전반적인 게임 플레이 부분도 어디서 본 것 같지만 나름 자신들의 특색을 내보고자 노력한 지점들이 보였고, 과도하게 피지컬 게임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적절한 시스템적 보정을 통해 보완해주고 있었다. 다만 스테이지 길이 조정이나, 스테이지 구성 등에서는 역시 아쉬움이 느껴졌다. 거의 맵 전체를 횡단하면서 풀어야 하는 퍼즐은 죽으면서 맵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면 안 될 때가 있어서 종종 불합리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높이 평가해주고 싶은 것은 스토리와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이버펑크 세계관에서 국가의 영향력은 곤두박질치고 기업의 영향력이 미친 듯이 늘어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산나비에서는 정부의 힘이 무척이나 강력하게. 그것도 도시 하나를 다 갈아버릴 정도로 강하게 묘사된다. 그야말로 주민등록번호로 모든 국민이 등록돼있는 대한민국에서나 보여줄 수 있는... 압도적인 중앙집권력이다. 나는 이 부분이 무척 신선했다고 생각한다. 그래! 솔직히 기업이 정부보다 쎼다는건 너무 우려먹었다. 이제 슬슬 정부가 굉장히 아주 센 사이버 펑크도 나올법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배경이 한국이란점은 굉장한 설득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스토리 또한 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해도 정말... 한국에서 만들었기에 그 감성이 잔뜩 살아난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스토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한-일-중의 동양 문화권에서 흔히 나오는 연출이지만... 그것을 사이버펑크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무척이나 훅 와닿았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기존의 가치가 무너져 내리고 돈으로 대표되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차가운 세계관이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또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산나비가 국제 시장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거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얘기가 길었다. 이번 연말, 딱히 별 다른 일정이 없다면 산나비는 어떨까? 크리스마스 시즌을 '옆구리 온도 방어전'이라고 표현한 글을 이전에 보았는데, 어쩌면 이 게임을 통해 우리 삶의 옆구리를 따뜻하게 해 줄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다들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를 바라겠다. 지금까지 『산나비』였다.